왜 로마법은 지금도 영향을 줄까? 2천 년을 버틴 법의 구조

로마제국은 사라졌다. 황제도, 원로원도, 로마 군단도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로마가 만든 것 가운데 하나는 제국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다. 바로 로마법이다.

오늘날 우리가 계약을 맺고, 재산의 소유권을 따지고, 빚을 갚을 의무를 논하고, 상속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는 방식에는 고대 로마에서 발전한 법적 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의 법률이 2천 년 전 로마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조항보다 법을 분류하고 해석하며 체계화하는 방법이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점이다.

로마법은 왜 살아남았나

핵심 요약

  • 로마법은 하나의 법전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변화하며 만들어진 법체계였다.
  • 기원전 5세기의 12표법은 로마의 법을 공개된 문자 규칙으로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 로마의 법률가들은 재산, 계약, 의무, 상속, 불법행위 같은 문제를 세밀하게 분석했다.
  •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 로마법의 방대한 유산이 다시 정리되었다.
  • 11세기 이후 서유럽의 법학자들이 이를 연구하면서 로마법은 유럽 법학의 공통 언어가 되었다.
  • 현대 민법은 로마법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변형하고 재해석한 결과다.

로마법은 처음부터 완성된 법전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로마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 사람이 어느 날 만든 법전이 아니다. 로마 공화정에서 제정된 법률, 재판을 운영하는 관리들의 실무, 황제의 명령, 그리고 법률가들이 남긴 해석이 수백 년 동안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법 전통에 가깝다.

그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12표법이다.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451~450년 무렵 법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이후 로마 시민이 볼 수 있도록 공적인 공간에 게시되었다. 12표법에는 재판 절차뿐 아니라 채무, 상속, 후견, 소유와 점유, 재산 피해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문제가 들어 있었다.

12표법의 모든 규칙이 오늘의 기준에서 합리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과 노예, 가족 구성원의 지위에는 현대 사회와 양립하기 어려운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했고 처벌 역시 매우 가혹한 경우가 있었다. 그럼에도 중요한 변화는 법이 일부 사람만 알고 있는 관습에서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규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로마법 발전의 세 축인 성문법·재판 실무·법률가 해석

그런데 왜 로마법은 다른 고대 법보다 오래 살아남았을까

오래된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후대까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고대 세계에는 로마보다 훨씬 이전의 법전도 있었다. 로마법이 특별했던 이유는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법을 다루는 전문적인 기술이 함께 발전했기 때문이다.

첫째, 구체적인 사건에서 일반적인 법 개념을 끌어냈다

누군가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 법적인 소유자인 것은 아니다. 물건을 빌려준 사람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의 권리도 다르다. 약속을 했다고 해서 모든 약속이 똑같은 법적 효과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로마의 법률가들은 이런 문제를 하나씩 구분했다. 소유와 점유, 채권과 의무, 상속, 특정한 계약 유형, 타인에게 입힌 손해 같은 개념을 분석하며 어떤 조건에서 어떤 법적 결과가 생기는지를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답 하나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나누고, 개념을 정의하고, 비슷한 사건과 다른 사건을 구별하는 사고방식이었다. 이 방법은 후대의 법학자들이 로마법을 다시 연구할 수 있게 만든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둘째, 사회가 바뀔 때 법도 해석을 통해 변화했다

로마는 작은 도시국가에서 시작해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는 거대한 국가로 성장했다. 사회가 커지면 기존 관습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늘어난다. 멀리 떨어진 지역의 사람들과 거래해야 했고, 서로 다른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재산과 계약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였다.

로마의 법 역시 이런 변화에 맞추어 발전했다. 법률가와 재판 실무는 기존 규칙의 의미를 해석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방법을 축적했다. 따라서 로마법은 단순한 옛 규칙의 목록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법적으로 분석하는 방법까지 포함하는 전통이 되었다.

셋째, 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학문으로 만들었다

로마 법학에서 특히 중요한 유산 가운데 하나는 법을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다. 사람의 법적 지위, 재산, 의무, 소송과 같은 분야를 나누고 각각의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은 후대 법학교육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로마법의 힘은 특정 조항 하나에 있지 않았다. 후대 학자들이 새로운 시대의 문제를 분석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법률의 문법을 남겼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결정적인 순간, 유스티니아누스가 로마법을 다시 모으다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법과 수많은 법률가의 글이 계속 쌓이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자료가 너무 방대해진 것이다.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6세기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흩어져 있던 로마법 자료를 정리하는 대규모 작업을 추진했다. 533년에는 고전기 법률가들의 저술을 발췌해 정리한 50권의 Digest가 공포되었고, 같은 해 법학 입문서인 Institutes도 마련되었다. 534년에는 황제들의 법령을 정리한 Code가 공포되었다.

이후의 새로운 황제 법령들을 모은 자료까지 포함해 후대에는 이 전통을 흔히 Corpus Iuris Civilis, 즉 로마 시민법 대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편찬 사업의 역사적 의미는 컸다. 수백 년 동안 축적된 로마 법률가들의 사고가 하나의 거대한 지식 저장고 안에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남지 않았다면 중세 유럽의 법학자들이 고대 로마법을 다시 공부하는 일도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12표법에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과 11세기 로마법 재발견까지 연표

제국은 무너졌는데 법은 어떻게 다시 살아났을까

서유럽에서 로마의 정치적 지배가 끝났다고 해서 로마법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영향에서 특히 중요한 전환은 11세기 무렵 로마법 연구가 다시 활발해진 사건이었다.

옥스퍼드대학교 법학부에 따르면 유스티니아누스의 Digest가 북부 이탈리아에서 약 1070년 무렵 다시 주목받으면서 서유럽에서 로마법 연구가 부활했다. 볼로냐는 그 중심지가 되었고 법학자들은 오래된 로마법 문장을 읽고 그 의미를 설명하는 주석을 붙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법을 배우기 위해 볼로냐로 모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교육받은 학자들이 다시 유럽 각지로 이동했다. 로마법 연구는 옥스퍼드와 파리 등 여러 교육기관으로 퍼져 나갔다.

여기서 로마법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고대 로마에서 실제로 적용되었던 법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중세 사회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의 법률 개념을 다시 해석한 것이다.

유럽은 왜 굳이 천 년 전의 로마법을 공부했을까

중세 유럽은 하나의 통일된 법률로 움직이는 세계가 아니었다. 지역마다 관습이 달랐고 도시의 규칙, 영주의 권리, 왕의 법령, 교회법 등이 겹쳐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로마법은 여러 지역의 법률가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정교한 참고 체계를 제공했다. 이미 방대한 사례와 개념이 정리되어 있었고 법률가들이 서로 논쟁할 수 있는 공통 용어도 존재했다.

로마법은 교회법과 지역 관습법 등과 결합하면서 중세와 근세 유럽에서 흔히 ius commune이라고 부르는 공통의 법학 전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근대 국가들이 민법을 하나의 법전으로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수백 년 동안 대학과 법정에서 연구된 로마법의 개념과 분류 방식은 중요한 지적 재료로 남아 있었다.

오늘날 법에는 로마법의 무엇이 남아 있을까

가장 강한 영향은 유럽 대륙에서 발전한 대륙법 또는 시민법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 여러 나라뿐 아니라 그 법체계의 영향을 받은 다른 지역의 민법에도 로마법에서 발전하고 중세·근대를 거치며 재해석된 법 개념들이 들어갔다.

  • 재산법: 누가 어떤 물건에 어떤 권리를 가지는지 구분하는 사고
  • 채권과 의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정한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관계
  • 계약: 합의와 거래에서 어떤 법적 의무가 발생하는지를 분석하는 전통
  • 불법행위: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책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 상속: 사망한 사람의 재산과 채무를 누구에게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에 관한 법적 구조

다만 이 개념들이 고대 로마의 규칙 그대로 현재 법전에 들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현대 계약법은 로마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거래를 다루며, 현대 재산법과 손해배상법 역시 산업화와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발전 속에서 크게 변화했다.

따라서 현대법 속의 로마법을 찾을 때는 특정 문장의 복사본을 찾기보다 문제를 나누고 개념을 정의하는 기본 구조를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로마법에서 현대 민법으로 이어진 개념과 현대에 달라진 원칙 비교

영국과 미국 같은 영미법 국가에는 영향이 없을까

그렇지도 않다. 영국에서 발전한 보통법, 즉 common law는 유럽 대륙의 시민법과 다른 경로를 따라 발전했다. 따라서 영국법 전체를 로마법의 후손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그럼에도 로마법 연구는 영국의 법학과 일부 법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옥스퍼드에서는 중세부터 로마법을 연구했고 오늘날에도 로마 사법이 법학교육의 한 부분으로 다뤄지고 있다. 하버드의 로마법 자료 역시 로마법이 영미법 전통에 끼친 영향은 대륙법보다 작지만 여전히 상당하다고 설명한다.

즉 로마법의 영향은 세계 어디에서나 같은 정도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대륙법 전통에서는 매우 직접적인 반면, 영미법에서는 더 제한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현대의 법치주의도 모두 로마에서 시작됐을까

여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로마법이 현대 법률의 중요한 역사적 재료라는 사실과 오늘날의 민주주의·인권·평등 원칙이 모두 로마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고대 로마 사회에는 노예제가 존재했고 시민과 비시민의 법적 지위가 달랐다. 가족 내부에서도 가장의 권한이 매우 강했으며 여성의 법적 지위 역시 현대의 평등 원칙과 거리가 멀었다. 실제 12표법 자료만 보더라도 오늘날 받아들일 수 없는 규정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인권, 보통선거, 성평등, 헌법에 의한 기본권 보장 등은 고대 이후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변화 속에서 발전했다. 따라서 로마법의 영향을 이야기하면서 현대의 가치까지 모두 로마의 업적으로 돌리는 것은 역사적 변화의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셈이다.

결국 살아남은 것은 법 조항보다 법을 생각하는 방법이었다

로마제국은 사라졌지만 로마법은 한 번 더 삶을 얻었다. 그 이유는 정복한 영토가 넓어서만도, 로마라는 이름이 유명해서만도 아니었다.

로마의 법률가들은 일상의 분쟁을 수많은 개념으로 나누고, 비슷해 보이는 사건 사이의 차이를 찾아내며, 그 차이가 어떤 법적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오랫동안 토론했다.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는 그 거대한 축적물이 정리되었고, 중세 유럽의 법학자들은 이를 다시 발견해 자신들의 시대에 맞게 읽었다.

그래서 로마법의 역사는 법 하나가 2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계속 읽히고, 해석되고, 수정되고, 새로운 사회에 맞게 다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살아남은 역사다.

로마가 오늘날의 법에 남긴 가장 긴 그림자는 어쩌면 하나의 조항이 아닐지도 모른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개념으로 나누고, 그 개념 사이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따지는 방법. 제국은 사라졌지만 그 사고법은 법학 속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로마법을 현재에도 그대로 사용하는 나라가 있나요?

고대 로마법 전체를 그대로 국가의 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럽의 대륙법 전통과 그 영향을 받은 여러 국가의 민법은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재해석된 로마법의 개념과 체계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12표법이 로마 최초의 법인가요?

로마에는 12표법 이전에도 관습과 여러 규칙이 존재했다. 따라서 법 자체가 12표법에서 처음 생겼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12표법의 중요한 의미는 기존의 법적 관행을 문자로 정리해 공개하는 중요한 단계였다는 데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한 권짜리 법전인가요?

아니다. 오늘날 Corpus Iuris Civilis라고 부르는 전통에는 Digest, Institutes, Code와 이후의 새로운 황제 법령을 모은 Novels 등 여러 자료가 포함된다.

현대 민법은 로마법을 그대로 옮긴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 로마법은 중세의 교회법과 관습법, 근대의 자연법 사상과 국가별 입법 등을 거치며 크게 변했다. 현대 민법은 이런 오랜 역사적 변화가 축적된 결과다.

참고 출처

자료 확인일: 2026년 8월 11일